지구촌 이야기

[카다피] Qaddafi 의 시원스런 무한독설 ㅡ 서방 vs 반서방

타이거뉴스 2009. 9. 29. 13:52

 

 

 

 

 

 

리비아 국가원수, 한꺼번에 '40명의 미녀 경호원' 대동해 

 

 

  ★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가 이탈리아를 처음 공식 방문한 가운데

        그를 경호하는 여전사들에게 이탈리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카다피 국가 원수를 가장 밀착해 경호하는 부대는 일명 아마조네스라고 불리는 여자

        경호원들로서 이 여자 경호대는 1979년 당시 리비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구 동독 정보원인 칼 한슈의 제안으로 조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리던 카다피에게  여성이 남성보다 자신의 상관에 대한

       복종심이 훨씬 강하다고 제안한 게 받아들여졌다는 것. 현재 리비아에는 약 300여 명의

       여성 경호요원들이 한 부대에 거주하면서 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비아는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매력적인 건설 시장 이었으며,

최근에는 둘째 아들이 선봉에 나서서  

 의욕적인 국가 재건 프로젝들을 발주하고 있습니다.

 

Libya  와 Muammar  Qaddafi  국가원수 에 대해  짧막 짧막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우선 요사이,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 몇 토막..ㅎ 

자충 우돌이라 해도 좋다...  너무 시원 시원 하지 않는가...

누군 4차원이라 했는데.. 시대를 꿰뚫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 서방 vs 반 서방

오리엔탈리즘과 신자본주의의 아우라에 대해서는 특히 한국인들은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여기에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세력들까지 더해지면서 사회의 기저에는 서방의 논리가 깔려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중국에 가면 TV를 보며 가장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국제 뉴스'다. 

우리는 보통 '워싱턴에서 KBS XXX입니다' 라는 리포팅을 자주 듣는다. 서방의 정치 경제적 구심점은 우리에게 필수 가치로 느껴진다.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등에 대한 언급은 생각할 여지조차 없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폭탄테러가 존재하는 곳이고, 아프리카는 해적들이 들끓는 소굴일 뿐이다. 중남미의 브라질은 삼바 춤을 주는 화면이 사실상 전부다. 글로벌 콘텐츠 소비를 얼마나 편협하게 하고 있는가. 국내 지도층에서도 독일, 프랑스 등 유학파, 또는 중남미나 중국 유학파 보다는 북미 지역 수학생들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중국에서 TV를 시청하면 월드 뉴스로 가장 먼저 또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뉴스가 범 중화권 뉴스와 함께 중동, 아프리카 등 우리에게 생소한 지역들의 소식이다. 그 다음으로 북미 또는 유럽 지역역의 소식이 더해진다.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기타 사회주의/반미를 표방하고 있는 주요 중동 국가들의 소식은 무척 자세히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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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다피의 독설 무한도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67, Muammar Abu Minyar al Qaddafi) 국가원수는 정말 독특한 캐릭터다. 사실 이슬람권 '리비아'는 국가 자체가 독특하면서도 매우 우울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1969년 9월 육군 대위 카다피는 '이슬람 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군사 쿠데타로 이드리스 왕을 축출하고 정권을 찬탈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군 총사령관 겸 리비아의 새로운 통치기구인 혁명평의회 의장으로 등극했다. 카다피는 '이슬람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리비아에 대한 이야기 http://www.allafrica.co.kr/45 는 링크를 더 참고하기 바란다. 아무튼 그는 지난 40여년 간 리비아를 주무르고 있다. 서방에서 말하는 소위 '독재자'가 맞다.

그런 그가 이번 UN총회에 등장했다. 국제 무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그의 독설이 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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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총회 최대 뉴스메이커는 단연 카다피다. 숙소로 텐트를 치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한 그는 이날 UN총회 행사장에 화려한 리비아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 직후다. 총회에서 연설은 15분이지만, 그는 무려 96분을 사용했다. 연단을 장악한 채 시간 초과 메시지도 무시해 버렸다. 프롬프터도 보지 않았고, 손으로 쓴 메모지에 의존했다. 아랍어 통역사는 카다피의 속사포 연설 중간에 녹다운이 돼 버려 교체돼야 했다. 이번 장시간 연설은 지난 1960년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열변을 토하며 세웠던 4시간 30분의 기록에는 못 미친다.

이날 발언의 주요 내용은 이슬람권이 느끼고 있는 뿌리 깊은 서방 세계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속 시원하게 까발리고 있다. 일견 웃긴 소리겠지만, 사실 웃을 일도 아니다. 

1) "아프리카 1천 왕국의 이름으로' 서방 세계에 대해 7조7천700억달러를 보상하라.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나라들로부터 아프리카는 그 돈을 되돌려 받을 자격이 있다"

2) "뉴욕은 너무 멀고 보안이 빡빡하다. 유엔 본부를 리비아로 옮기자"고 제안. 

3) 신종 인플루엔자가 (서방 국가의)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생물무기가 아닌가 의심된다.

4)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과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에 대한 재조사 촉구.

5) "유엔에 대한 존경은 없어졌다. 안보리는 1945년 유엔 창설이래 약 65개의 전쟁이 있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다른 약소국들을 2류국가로 경멸해 왔고 자기들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해 왔다.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박탈해야 한다. 안전보장 이사회가 아니라 테러 이사회다. "

6) "유엔은 모든 국가가 동등하다는 유엔 헌장의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며 유엔 헌장을 찢어 유엔 사무부총장과 총회 의장을 향해 던짐,

7) 다만,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에 대해서는 `아프리카의 아들'이라며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극찬. "영구히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라”고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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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을 일인가? 우리도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카다피의 막무가내, 표현은 확실히 잘못됐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리비아처럼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40년 독재를 지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서방 이외에는 아예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는 국내 현실이 개탄스러운 것이다. 이해한 뒤에 비판해도 늦지 않다. 심지어 '리비아가 어디 붙어 있는 곳인가'라는 젊은 세대의 의식은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다. 극도의 냄비 근성을 보여주는 http://itviewpoint.com/90115 상황일진데 뭘 더 바라겠는가.

한국인들은 구글이나 야후는 알아도 막투브는 모른다. 사실 비서구권 시각에서는 너무나 말이 안된다. 네이버는 알아도 시나나 소후는 모른다. 범 중화권이 보기에는 코웃음을 칠 일이다.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안드로메다 수준이다. 몰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고와 의식이 북미권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 한 분이 "한국인들은 북미를 다녀 와야 발전하더라"라는 표현까지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적어도 모든 선진형 사고의 전형으로 북미를 우선시하는 한국에서는 그렇다.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아직도 여러분에게 '중동 = 열사의 나라' '중국 = 땟놈의 천국' 일 뿐인가. 기독교, 기득권층 등을 비롯해 서구권의 의식 배양을 강요한 주요 요소부터 강력한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ITViewpoint 서명덕 기자

 

 

 

기타 다른 기사들..~~

 

 

카다피 “오바마 영구집권 해야” 돌출발언에 폭소

첫 유엔총회 연설에 오른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돌출발언과 행동을 해 화제를 모았다.

사상 처음으로 유엔 총회장에 참석한 카다피는 길고 품이 넓은 화려한 리비아 의상을 입고 등장해 ‘왕중의 왕’으로 소개를 받고 느릿느릿 연단에 올라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 직후였다. 총회 연설은 15분이 할당되지만, 그는 무려 90분 동안이나 연단을 장악한 채 장황하게 얘기를 끌어 나갔다. 프롬프터도 보지 않고 손으로 쓴 메모지를 가끔씩 보면서 하는 즉석 연설이었다.

카다피는 ‘아프리카 1000왕국의 이름으로’ 서방 세계에 대해 7조7700억달러를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나라들로부터 아프리카는 그 돈을 되돌려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유엔에 대한 존경은 없어졌다”고 일갈했다. 특히 ‘안보리’에 대해 “1945년 유엔 창설이래 약 65개의 전쟁이 있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다른 약소국들을 2류국가로 경멸해 왔고 자기들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해 왔다”면서 “안전보장이사회라고 불러서는 안되며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바마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찬사를 늘어 놓았다.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를 ‘아프리카의 아들’이라며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한 카다피는 “오바마는 향후 4년 또는 8년 동안 어둠속의 희미한 불빛이며 그가 물러나게 되면 우리가 뒤로 후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오바마가 영구히 미국의 지도자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총회장에서는 폭소와 함께 산발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카다피가 속사포 같은 아랍어로 장시간 연설을 하는 통에 이를 통역하느라 기진맥진한 유엔 동시통역사가 중간에 교체되기도 했다. 그의 연설시간은 정확히 1시간 36분이었지만, 1960년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세웠던 4시간 30분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 연설이 끝난 후 그는 곧바로 퇴장하지 않고 총회 의장석으로 올라가 자신이 욕했던 유엔의 최고 간부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카다피의 연설이 시작되기 직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 대사가 총회장을 빠져나감으로써 사실상 연설을 보이콧했다. 미국의 외교를 책임진 수뇌부가 카다피의 연설을 경청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카다피가 집권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특별한 ‘손님’이기는 하지만 40년간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독재자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헤럴드 경제 고지희 기자(jgo@heraldm.com)
 

카다피 유엔 총회 90분간 연설..통역사 기진맥진

파이낸셜뉴스 | 오미영 | 입력 2009.09.24 18:53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무려 90분간 연설을 했다. 유엔 총회에서 처음 연설한 그는 준비한 원고 없이 노란색 노트에 적힌 메모를 보며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쏟아내 총회 참석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총회 연설은 일반적으로 15분이 할당된다.

이 자리에서 카다피는 서방 세계에 대해 7조7700억달러를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유엔에 대해 비난하며 "'안보리'에 대해 1945년 유엔 창설이래 약 65개의 전쟁이 있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다른 약소국들을 2류국가로 경멸해 왔고 자기들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해 왔다"면서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안전보장이사회라고 불러서는 안되며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찬사를 늘어 놓았다.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를 '아프리카의 아들'이라며 오바마가 영구히 미국의 지도자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다피가 아랍어로 장시간 연설을 하는 바람에 기진맥진한 유엔 동시통역사가 중간에 교체되기도 했다.

그의 연설시간은 정확히 1시간 36분이었지만, 1960년에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열변을 토하며 세웠던 4시간 30분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

오미영기자
 
 
 
 
 
카다피는 누구인가..?? 
 
방랑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 유목민의 아들로서 카다피는 리비아 사막의 한 천막에서 태어났다. 그는 재능 있는 학생이었으며 1963년 리비아대학교를 졸업했다. 독실한 이슬람교도이자 열렬한 아랍 민족주의자로서 일찍부터 이드리스 1세의 왕정을 무너뜨리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1965년 리비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꾸준히 진급했으며, 그동안 계속해서 동료 육군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 쿠데타를 계획했다. 육군 대위 카다피는 1969년 9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이드리스 왕을 물러나게 한 뒤 정권을 잡았다.
 
그는 군의 총사령관이 되었고, 또 리비아의 새로운 통치기구인 혁명평의회의장으로 뽑혔다. 1970년 그는 리비아 내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기지와 영국군 기지를 철수시켰다. 또 같은 해에 리비아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 공동체 대부분을 추방했다. 1973년에는 모든 외국인 소유 석유 재산을 국유화했다.
 
또 그 자신이 믿고 있는 엄격한 이슬람교 규율에 따라 음주와 도박을 금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리비아를 다른 아랍 국가들과 통합하려는 끈질긴 시도를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단호히 반대했던 그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 형성된 거부전선(rejectionist front)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군사 모험주의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 카다피 정부는 이집트와 수단에서 실패로 끝난 수차례의 쿠데타와 연루되어 있었고, 리비아 군대는 이웃나라 차드 공화국의 장기간에 걸친 내전에 끈질기게 개입했다.

 
〈녹색서 The Green Book〉(1976, 1980)라는 2권짜리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1974년 이후 카다피는 이슬람교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표면상으로는 국민의회나 노동단체, 다른 대중 조직체들을 통해 운영되는 인민정부 형태를 띠면서 동시에 산업국유화라고 하는 정책이 추진될 수 있었다. 한편 괴팍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세계 무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다피 정부는 블랙 팬서와 미국 이슬람교 연합, 그리고 북아일랜드에 있는 아일랜드 공화국군 등 전세계의 다양한 혁명단체와 테러 단체들에게 재정지원을 해주었다. 리비아 정보 기관의 요원들이 외국 거주 망명자들의 암살을 수행했으며, 일설에는 팔레스타인 또는 다른 아랍 과격주의자들이 유럽에서 일으킨 몇 건의 유혈 테러 사건에도 리비아 정부가 연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들은 그와 미국 정부 사이의 분쟁을 점점 심화시켜 마침내 1986년 4월 영국 주둔 미군 전투기들이 리비아의 몇몇 지역을 폭격했다. 이 폭격으로 카다피의 자녀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기는 했지만 카다피 자신은 무사했다.
 

 

리비아  일반 개황

 

™        :    1,760천㎢(한반도의 8), 해안선 2,000km, 사막 93%

™           :    630만명(’08), 수도 트리폴리(130만명)

™    정치체제   :    총인민회의(General People’s Committee)에 권력 집중

                          * 실권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67), ’69.9.1 혁명 성공

™           :    아랍 및 베르베르족(97%), 기타(3%)

™           :    아랍어(공용어), 영어, 이태리어, 불어

™    주요자원   :    석유(415억배럴, 세계 8, 전세계 매장량의 약 3.4%)

                          가스(1.42조㎥, 세계 23, 전세계 매장량의 0.7%)

                          * 전체 유전 매장 추정 지역 중 1/4만 개발 상태임

™    GDP(‘08):   U$899(‘07: U$717)

                                1인당 GDP U$14,500(‘07: U$11,800)

™    외환보유고     :  U$1,500 (IMF 실사보고서)

™          :    2009.6.5 현재 1U$=1.26LD (Libyan Dinar), 시장환율제

 

  아프리카 최대 자원 부국이자, 유럽-중동-아프리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

 

 

 

 

최근 정치, 경제 동향

 

£      정치

 

™         ’09. 8. 20 영국의 팬암기 폭파범의 석방을 계기로, ‘08년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 (배경: 국영기업 민영화 등 개혁안을 실행하려다 보수파의 반대에 직면)한 카다피의 차남 Saif Al-Islam Gaddafi(37)가 카다피의 유력 후계자로 다시 부상

-         ‘07 4월 리비아에서 British Petroleum의 석유개발권( 30조원 가치) 허가를 무기로 석방 요구함에 따라, 영국 블레어 총리가 석방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짐

-         영국계 기업의 리비아 진출이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

 

™         미국/EU과의 관계 급속 정상화, 외국인 투자 활성화 전망

-         미국 기업들, 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관광 및 인프라 부문 투자 확대 전망

*   ‘80년 미국과 외교 단절 → ‘03년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 → ‘04년 경제 제재 해제 → ‘08년 팬암기 폭파 미국인 희생자 보상 → ‘09년 미국 대사 부임

 

™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외교활동에 역점

-        AU(African Union)체제 출범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04.10월 수단 다르푸르 사태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여 아프리카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대외에 과시

 

™         중동 국가들과는 소원한 관계 유지

-        ’02년 아랍연맹 탈퇴, ’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아랍정상회담에서 카다피와 당시 사우디 왕세자 압둘라(현 국왕)간 설전을 벌이는 등 아랍국가들과는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      경제

 

™         세계 금융 위기의 영향 미미

- 세계 시장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 리비아 금융시장의 특성상 유가 하락이외의 영향은 극히 제한적 (외국자산의 대부분이 외환예금 형태로 구성)

- ’09.3S&P 국가신용등급 “A-”로 투자적격 획득 (참고 : 싱가폴 AAA, 한국 A. )

     ’03년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 이후, 최초의 신용평가 등급

 

™         재정흑자 지속 및 경상수지 흑자 안정적 유지

- 재정흑자는 GDP 25% 수준, 경상수지는 GDP 41% 수준에서 안정

- 그 결과, 순 외환자산이 983억불(’07) 1,360억불(’08)으로 증가함

 

™         경제 분야 현대화를 위한 노력 평가

- 은행민영화, 국가예산 통합, 민간부문 육성 등에서 주목할만한 진전, 그 결과 국가 신용 등급에도 긍정적인 영향

 

™         ’09거시 경제 전망

- 경제성장률 및 인플레율 하락

•실질 경제성장률 2% 선 유지 (석유생산 1.5% 감소, 비석유부문 6% 성장)

•국제적 생필품 가격 하락으로 인플레율은 5%선 유지 예상

 

- 재정 흑자폭 감소

   석유부문 수입 40% 감소 전망되나, 재정 지출 역시 다소 감소 예상되어 재정흑자는 GDP 10% 수준 유지 예상

* 재정지출에서 자본적 지출은 20% 줄고, 경상지출은 25% 늘어날 전망

 

- ‘09년 경상수지흑자는 GDP 17% 수준 축소되나, 순외화자산은 1,500억불 수준으로 증가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