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 받은 말씀 †

법륜 스님 - 점이나 사주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타이거뉴스 2013. 3. 5. 03:06

점이나 사주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법륜 스님 2013. 01. 08
조회수 5397 추천수 0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작년에 건강 문제로 갑자기 그만뒀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어머니가 점을 봤더니 제가 그때쯤에 시험을 포기할 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저는 지금껏 점 같은 데 의지하는 사람들이 한심스럽고 열심히 사는 만큼 보상이 따르는 게 인생이라고 믿었는데, 삶의 신조가 흔들리고 한 방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앞길이 답답하다 보니 저도 거기서 점을 보게 됐습니다. 제 사주가 공무원에 잘 맞고 꼭 합격할 거라고 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사주팔자나 운명이 정말 있나 하는 싶고 혼란스럽습니다.


사주-.jpg
그림  <한겨레> 자료


세상사 관점 따라 달리 보여 인생은 운명대로  안 움직여
100% 미래예측은 불가능해 노력 하되 결과는 인연일 뿐

세상일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고,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 눈 먼 사람이 코끼리 다리만 만져보면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다고 하고, 꼬리만 만져보면 빗자루 같이 생겼다고 하고, 코만 만져보면 뱀처럼 생겼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이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인류가 오랫동안 믿고 의지하고 전해 내려온 풍습이나 이념이 있다면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존재할 수가 없겠죠.

그런데 일리가 있다고 해서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과 30분쯤 이야기하는 동안 그 사람이 담배를 3대 피웠습니다. 내가 그에게 “어제도 담배 피웠죠?”라고 물었다면 그 말이 맞을 확률은 거의 100%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내일도 담배를 피울 겁니다.” 했다면 그 말은 얼마나 맞을까요? 99% 맞으리라 예상할 수는 있지만 100%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오늘로 담배를 끊을 수도 있고, 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져서 하루 정도는 안 피울 수도 있으니까요. 삶에는 가변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미래는 100%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운명대로만 인생이 움직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자의 말처럼 인생이 언제나 열심히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보장한다는 생각도 맞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크고 길게 보면 필연적인 인과법칙에 의해 움직이지만, 순간순간의 짧은 시간만을 보면 우연적 요소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고 다 우연이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기계적인 필연론보다는 약간의 가변성, 불확정성을 인정하는 편이 더 현실에 가깝다고 하겠죠.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노력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결과는 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기독교 신자라면, 모든 게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니 매사가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걸 믿어야하겠죠. 내가 할 일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고 시험에 붙고 안 붙고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붙는 게 좋은 일이면 붙게 해줄 거고 떨어지는 게 좋은 일이면 떨어지게 해줄 겁니다. 그래서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시험에 붙는 게 나와 세상에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니까요. 같은 이치를 불교적으로는 ‘다만 인연을 따른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질문자도 공무원시험을 보면 꼭 합격한다는 말에 희망을 갖지 않았습니까.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면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일종의 심리적인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물에 빠져 죽은 아들을 위해 굿을 하는데 무당이 물속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건져내어 태우면서 아들의 영혼이 물속에서 나와 천당으로 갔다고 하면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 부모 마음에는 훨씬 위로가 됩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논할 게 아니라 다만 그 믿음이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늘을 믿든 나무를 믿든 돌멩이를 믿든, 믿음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진위를 따질 수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믿음은 믿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다 한 번 신년 운세 보고 위안 삼는 정도는 큰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100% 믿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법륜 스님
1988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의 삶을 서원하고, 정토회를 설립했다. 기아·질병·문맹퇴치운동과 인권·평화·통일·생태환경운동에 앞장서는 실천하는 보살로서 2000년 만해상을, 2002년에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2007년엔 민족화해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 book@jungto.org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결혼 후 마음이 바뀔까 걱정입니다'"결혼 후 마음이 바뀔까 걱정입니다"

    법륜 스님 | 2013. 02. 24

    "결혼 후 마음이 바뀔까 걱정입니다"[질문]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연애하다 마음이 변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혼적령기에 들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결혼 뒤 마음이 변한다고 해서 그때마...

  • 성폭행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성폭행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

    법륜 스님 | 2013. 02. 07

    고흐의 그림 <슬픔>-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데, 제 우울증의 근본에는 가족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저를 성폭행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때문에 집안엔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어릴 땐 아버지만 미웠는데 아...

  • 산만하고 무계획적인 아이산만하고 무계획적인 아이

    법륜 스님 | 2012. 12. 03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학원을 간다고 했다가 안 간다고 했다가 또 다시 간다고 했다가 이런 식으로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고, 하루 생활도 아무 계획이나 계산 없이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숙제나 정리정돈이나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생활이 ...

  • 특별반 우등생의 불안특별반 우등생의 불안

    법륜 스님 | 2012. 10. 23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 임용고시 준비 중 슬럼프임용고시 준비 중 슬럼프

    법륜 스님 | 2012. 10. 16

    저는 스물일곱 살 건장한 청년입니다. 제 꿈은 영어교사라 지금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 번 시험을 보았는데 계속 떨어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몸이 안 좋거나 기분이 가라앉아 슬럼프가 찾아오면 한 2~3일...